구속 면한 박병대·고영한 前대법관..檢 "영장기각, 재판독립 훼손 '중범죄' 규명 막는 것"

박병대 전 대법관(왼쪽)과 고영한 전 대법관/사진=연합뉴스

'사법농단' 연루 의혹으로 헌정 이래 처음으로 전직 대법관들에 청구된 구속영장이 법원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검찰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구속된 상태에서 상급자인 이들에 대해서는 다른 판단을 내린 데 대해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7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재판부는 전날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열어 구속 필요성을 심리한 후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우선 박 전 대법관의 혐의를 심리한 임민성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기각 사유에 대해 "범죄혐의 중 상당부분에 관해 피의자의 관여 범위 및 그 정도 등 공모관계의 성립에 대해 의문의 여지가 있고, 이미 다수의 관련 증거자료가 수집돼 있는 데다 피의자가 수사에 임하는 태도 및 현재까지 수사경과 등에 비춰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피의자의 주거 및 직업, 가족관계 등을 종합해 보면, 현단계에서 구속사유나 구속의 필요성 및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도 고 전 대법관에 대한 영장심사를 진행한 뒤 "이번 사건 범행에서 피의자의 관여 정도 및 행태, 일부 범죄사실에 있어서 공모 여부에 대한 소명 정도, 피의자의 주거지 압수수색을 포함해 광범위한 증거수집이 이뤄졌다"며 "현재까지의 수사진행 경과 등에 비춰 현 단계에서 피의자에 대한 구속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헌정 이래 처음으로 대법관을 상대로 청구된 구속영장은 결국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박 전 대법관과 고 전 대법관의 구속영장 청구서의 분량만 각각 158쪽, 108쪽에 달할 정도로 검찰은 심혈을 기울였으나 허사로 돌아갔다.

검찰은 두 전직 대법관에 대한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을 강하게 내비쳤다.

검찰 측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철저한 상하 명령체계에 따른 범죄"라며 "큰 권한을 행사한 상급자에게 더 큰 형사책임을 묻는 것이 법이고 상식"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하급자인 임종헌 전 차장이 구속된 상태에서 직근 상급자들인 박병대, 고영한 전 처장 모두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은 재판의 독립을 훼손한 반헌법적 중범죄들의 전모를 규명하는 것을 막는 것으로서 대단히 부당하다"고 꼬집었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3일 이들의 구속영장 청구서를 법원에 접수했다.

2014년 2월부터 2년간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박 전 대법관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민사소송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관련 행정소송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댓글 사건 형사재판 △옛 통합진보당 국회·지방의회 의원들의 지위확인 소송 등 여러 재판에 개입하거나 법관 독립을 침해하는 내용의 문건 작성을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그는 2015년 문모 당시 부산고법 판사의 비위 사실을 검찰로부터 통보받고도 징계 절차를 밟지 않은 직무유기 혐의를 받는다. 고 전 대법관 역시 이듬해 문 판사가 '스폰서'였던 건설업자 정모씨의 형사재판 정보를 누설하려 한다는 비위 첩보를 보고받고 징계하지 않았다.

박 전 대법관의 후임으로 2016년 2월부터 지난해 5월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고 전 대법관은 '정운호 게이트' 사건 당시 판사들을 상대로 한 수사 확대를 차단하기 위해 수사정보를 빼내고 영장재판 가이드라인을 내려보낸 혐의를 받는다.

고 전 대법관은 2016년 서울서부지검의 집행관 비리 수사 때도 일선 법원을 통해 검찰 수사기밀을 보고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대법원 위상을 유지하려고 헌법재판소 내부 정보를 수집하면서 박한철 당시 헌재 소장을 비난하는 내용의 한 언론사 기사를 대필하게 지시한 혐의도 받는다. 이밖에 사법부 블랙리스트를 계속 관리·실행한 혐의도 있다.

이날 고 전 대법관의 변호인은 "법원은 국민이 희망을 얻고 위로받을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이며 대법관은 바로 그런 권위의 상징"이라며 "전직 대법관이 구속되는 모습으로 국민에게 상처를 주고 믿음과 희망이 꺾이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 전 대법관의 변호인은 "대법관께서 사실 대로 진술하셨다. 재판부에서 현명한 판단 내려주실 것으로 믿고 있다"고 밝혔다.

두 전직 대법관은 주요 혐의에 대해 부인하는 입장이어서 향후 재판에서 검찰과의 치열한 법리 공방이 예상된다.


fnljs@fnnews.com 이진석 기자